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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이야기
  • 미안함과 감사함, 교감 공동체

  • 작성자 : 이*양 작성일 : 2024-04-01 조회수 : 37

                                                                     미안함과 감사함, 교감 공동체

이계양(광주푸른꿈창작학교 교장)

 

가난한 선인들이 푸짐한 음식 장만하여 차례 지내고 배부르게 먹으며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했다던 추석인데도 세상은 어렵고 힘들기만 하다. 무엇보다도 먹고살기가 힘들다. 고물가, 고유가, 고환율 등으로 대부분의 물가가 끝없이 오르고 있어 생존 자체가 힘들다고 아우성이다. 또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가 온 인류의 입을 막고, 거리두기를 강요한 지 3년을 다 채워가며 현재진행형으로 힘들게 하고 있다. 감염에 대한 긴장과 불안이 공포가 되어 죽겠다는 절규가 거리에 낭자하다. 그뿐인가. 경쟁과 효율을 강제하는 사회경제적 체제와 이념, 구조로 인해 막다른 골목을 향해 질주하며 이생망을 외치게 하고 있다.

요즘 세상은 정치, 사회, 종교, 교육, 경제 등 모든 분야에서 염치, 체면을 살필 겨를이 없어 보인다. 서로가 삿대질하며 극악한 혐오와 배제가 판을 치는 가운데 가뭄, 폭우, 산불 등 기후위기까지 더하여 종말을 목전에 둔 살벌한 상황이다. 사람으로서 인격, 품격은 씨가 말라버린 듯하다. 오로지 나만살겠다는 오만과 독선 앞에 거지 같은 세상이다는 말에 진심을 담게 된다. 아니, ’거지 같다고 말해 놓고 보니 뚜르게네프(1818-1883)<거지>라는 시가 생각나서 미안한 마음이 든다. 좀 길지만 함께 읽어보고 싶다.

 

나는 거리를 걷고 있었다. 늙은 거지가 나의 팔소매를 잡아당겼다.

충혈된 눈에는 눈물이 어리었고, 파리한 입술, 갈갈이 찢어진 누더기,

진물이 흐르는 상처···, 아아, 얼마나 심한 가난이 이 불쌍한 사람을 괴롭히는가?

그는 진물이 흐르는 더러운 손을 내게 내밀었다. 그는 신음하면서 중얼중얼 동냥을 청하였다.

나는 주머니를 샅샅이 뒤져 보았다. 지갑도 없고, 시계도 없고, 손수건도 없었다.

아무것도 가지고 나온 게 없었다. 그런데 거지는 오히려 기다리고 있다.

그의 손은 벌벌 떨리고 있다. 이 일을 어쩌면 좋은가 하고 당황해하다가,

나는 그의 더럽고 벌벌 떠는 손을 힘 있게 덥석 잡았다.

여보십시오! 용서해 주십시오, 나는 마침 아무것도 가진 게 없습니다그려!”

거지는 충혈된 눈으로 나를 바라보더니 파리한 입술에 미소를 머금고,

그도 나의 싸늘한 손을 잡았다.

아니요, 당신께서는 ···하고 그는 중얼거렸다.

이것도 어찌나 감사한 일인지요, 참 고마운 선물입니다.” - <거지>(이영철 역)

 

극한 가난으로 짓뭉개진 처참한 생존. 모멸감마저 팽개친 채 구걸하는 늙은 거지. 그 앞에서 주머니를 샅샅이 뒤지는 ‘. 지갑도 시계도 손수건도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 그런데 기대에 찬 눈으로 기다리는 거지의 간절한 눈과 벌벌 떨리는 손. 당황 끝에 용서해 주세요. 난 아무것도 가진 게 없어요라며 거지의 손을 힘있게 덥석 잡으며 미안해하는 ‘. 그리고 아니요, 이것도 어찌나 감사한지요. 참 고마운 선물입니다라며 감사해하는 거지.

, ’의 미안한 마음이 놀랍다. 나는 가난에 고통받고 있는 그 누군가를 향해 줄 것이 없어 당황해하며 미안한 마음으로 진심을 담아 힘있게 손잡고 있는가. 가난은 나랏님도 구제할 수 없다는데 내가 어떻게? 제 가난은 스스로 책임져야지. 제 가난에 내가 왜 미안해해야 해? 하는 마음들로 무장한 채 살아가는 요즘의 나를 돌아보게 된다. 그 인격, 품격에 대하여. 다른 사람의 가난과 아픔, 고통이 나와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는 것이 절실해져 온다.

또 거지의 감사하는 마음은 더 놀랍다. 잔뜩 기대하게 한 를 향해 감사하다. 이것도 고마운 선물이다라고 하다니. 거지의 인격과 품격을 통해 다시 요즘의 나를 돌아보게 된다. “이것도 어찌나에 방점을 찍어 두고 싶다. 당황하며 미안해하는 의 마음을 이해, 공감하며 감사의 선물로 수용하는 거지의 자세야말로 지금의 나에게 절실한 가르침이요 채찍이다.

경제적 가난, 소외, 편견, 차별, 배제 등 각자도생의 사회 속에서 와 거지의 미안함과 감사함의 교감이야말로 생존의 근원적 힘이다. 결국 공동체는 미안함과 감사함의 교감을 통해 그 품격을 갖게 되고 유지할 수 있다. 추석을 맞고 보내며 <거지>를 다시 읽어 본다.

“~용서해 주십시오, 나는 마침 아무것도 가진 게 없습니다그려!”

“~이것도 어찌나 감사한 일인지요, 참 고마운 선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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