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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이야기
  • 우리는 깐부(동무)잖아

  • 작성자 : 이*양 작성일 : 2024-03-29 조회수 : 27

                                                                       우리는 깐부(동무)잖아

이계양(광주푸른꿈창작학교 교장)

 

우리 학교 선생님 한 분이 교통사고로 2주 동안 입원하게 되었다. 입원한 선생님의 치료와 회복과 함께 2주 동안 학생들의 수업 진행도 걱정이 되었다. 그런데 걱정은 기우였다. 동료 선생님들이 입원하신 선생님의 수업을 대체, 교체하겠다고 다투어 나선 때문이다. 아픈 동료를 위해 수업을 더하거나 바꾸어주는 수고를 통해 동참하겠다는 뜻이리라. 요즘 유행하는 말로 깐부이길 자처한 것이다.

2021, 세계적인 열풍을 몰고 온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 6화 제목은 깐부.

깐부는 딱지치기나 구슬치기 놀이를 할 때 동맹을 맺고 놀이하며, 자산을 함께 공유하는 가장 친한 친구, 짝꿍, 동반자를 뜻하는 은어로 국립국어원에서조차 어원을 확인하지 못하는 단어다. ‘니꺼 내꺼구분 없이 쓰는 매우 친밀한 친구 관계로 깜보, 깜부, 깐보라고도 한다. 어원도 평안도 방언이라는 설, 소규모 재즈 밴드를 뜻하는 캄보(combo)가 주한미군을 통해 전해졌다는 설, 친구 사이의 우정을 뜻하는 고사성어 관포지교(管鮑之交)에서 유래했다는 설 등으로 정확하지 않다. 프랜차이즈 치킨 브랜드명으로도 쓰이고 있다.

<오징어 게임>에서 목숨을 건 서바이벌 게임의 1번 참가자 오일남(오영수 분)은 구슬치기 게임에서 자신을 속여 아홉 개의 구슬을 딴 파트너 456번 성기훈에게 깐부를 맺자고 하며 남은 구슬 하나를 주면서 우리는 깐부잖아. 깐부끼리는 네 꺼, 내 꺼가 없는 거야라고 말하고 죽음을 택한다. 네 거 내 거 없이 구슬을 같이 쓰는 한 편으로서 죽음으로 끈끈한 우정을 표시하는 언어가 깐부인 것이다.

<오징어 게임>에는 잔혹한 장면들이 흔하게 등장한다. 이것은 승자독식의 신자유주의 현대사회의 실시간 화면이다. 456명의 등장인물들이 오로지 혼자의 승리를 위해 우정과 연대를 포기한 채 스스로 가해자가 되고 결국 피해자로 전락해 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스스로 가해자가 되어 동료에게 피해를 입힘으로써 자신의 승리를 추구해 가지만 궁극적으로는 스스로 피해자의 자리에 처하게 되는 아이러니를 반복한다.

게임에 참가한 사회의 낙오자들이 456억 원의 상금을 앞에 두고 벌이는 쩐의 전쟁에 세 가지 규칙이 있다. 첫째, 참가자는 임의로 게임을 중단할 수 없다. 둘째, 게임을 거부하는 참가자는 탈락으로 처리한다. 셋째, 참가자의 과반수가 동의할 경우 게임을 중단할 수 있다.

게임이 진행되는 동안에 자신의 가해가 결국 자신의 피해로 이어지는 구조를 알면서도 이를 멈추지 못하는 중요한 이유가 무엇일까. 게임을 중단할 규칙이 있다. 그것은 바로 과반수의 동의다.

<오징어 게임>은 과반수의 동의가 불가능한 우리의 현실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다. 과반수 동의는 어차피 불가능할 것을 알고 설정한 세상의 모순적 현실을 적나라하게 전제하고 있다.

각박한 약육강식의 일상 속에서 게임조직자들에게 이것이 허위, 기만, 가해를 밝히고 중단을 외칠 수 있겠는가. 마지막 한 사람의 승리자가 되려는 욕망으로 무장한 모든 참가자들이 그 욕망을 접고 "우리 이러다가는 다 죽어. 다 죽는단 말이야. 제발 그만해!"(오일남의 말)라고 외치고 나설 수 있겠는가 말이다. 그것도 혼자만이 아니라 과반수나 말이다. 파편화된 개인들은 모순된 현장 특히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처한 노동의 현장에서 기득권자나 게임조직자들에게 무참히 짓밟히고 희생될 뿐이다. 그것도 지속적으로 반복해서. 이 모순된 <오징어 게임>의 무한 반복을 언제, 어떻게 끝낼 수 있을까.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다시 오일남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

"우린 깐부잖아. 깐부끼리는 내 꺼, 네 꺼가 없는 거야.“

그렇다. 내 것, 네 것이 없이 서로 깐부가 되는 거다. 너나없이 주변인으로 막장의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에 생기를 회복하는 길은 패배자들, 좌절한 사람들, 낙오한 사람들끼리 서로서로 "우린 깐부잖아하며 손을 내미는 것이다. 손잡고 연대하는 것이다. 과반이 넘는 힘(공동체의 힘)으로 연대하여 게임 중단을 외치는 것이다. 과반이 넘는 공동체의 힘은 고립, 단절된 각자도생의 개인을 넘어서게 하여 연결의 생명력으로 삶의 희열을 가져다 줄 것이다.

교통사고로 입원한 푸른꿈 선생님, 그 선생님을 향하여 수업 대체, 교체로 손잡고 연대하며 우린 푸른꿈 한 식구잖아. 내 수업 네 수업이 어딨어하는 목소리가 새롭게 힘차게 들린다.

, 깐부 말고 아름다운 우리말 동무로 바꾸면 더 예쁘겠다.

, 우린 동무잖아 동무들끼리 내 거, 네 거가 어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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