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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이야기
  • “무슨 근심 있으세요?”

  • 작성자 : 이*양 작성일 : 2024-03-29 조회수 : 33

                                                          “무슨 근심 있으세요?”

이계양(광주푸른꿈창작학교 교장)

 

(, , ) ”들어 오세요.“

드릴 말씀이 있어서 왔습니다. 지난번 말씀하신 OOO 문제는 논의한 결과 ~~~ 했습니다

, 그래요. 그렇게 논의가 되었군요. 알았어요.“

용무를 마친 O 선생님은 뭔가 석연치 않은 듯 고개를 기웃거리며 방을 나갔다.

잠시 후. (, , ) ”들어 오세요.“

말씀드리기 뭐한데 혹시 무슨 근심 있으세요?“

아뇨, 없는데요. 왜요?

교장쌤의 얼굴이 평소와 달리 근심이 많아 보여서요.”

그래요, 아마 이것저것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해서 표정이 좀 굳어 있었나 봐요.”

무슨 걱정인지는 모르겠으나 너무 염려하지 마세요. 주제넘은 말씀인지 모르나 학교와 선생님들이 많이 좋아지고 있어요. 서로들 그렇게 느끼고 있어요

그래요, 참 다행이고 고맙네요. 제게 힘이 되고 위로가 되네요.”

아뇨, 제가 주제넘은 말씀을 드렸다면 죄송해요.”

뭘요, 제가 오히려 고마운데요. 이렇게 제 표정을 읽고 무슨 근심 있느냐고 물어주니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요. O 선생님, 참 고마워요.”

뭘요, 제가 더 잘해서 걱정을 덜어드리고 싶은데 잘 안 되네요.”

아이고, 지금도 잘하고 계십니다. 같이 더 잘 해 봅시다. 고마워요.”

쑥스러운 표정과 몸짓, 그리고 얇은 미소를 남기고 다시 방을 나갔다.

오늘 있었던 O 선생님과의 대화를 재구성해 보았다.

그래, 참 감사한 일이다. 용무를 보러왔다가 용무만 보고 끝난 것이 아니라 내 얼굴 표정을 읽어주는 사람과 같이 있다는 사실이. 또 표정을 읽는 데 그치지 않고 다시 찾아와 무슨 걱정이 있는지 물어봐 주는 사람과 함께 산다는 사실이. 걱정의 내용을 묻는데 그치지 않고 걱정을 덜어주고 싶은 속마음을 가진 사람과 더불어 살고 있다는 사실이.

사마천이의 사기열전에 나오는 감무와 손자 감라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중국 진나라 진시황(秦始皇)은 죽음이 두려워 어느 날 감무 대신을 불러 명령했다. “불로장생의 명약인 수탉이 낳은 알을 가져오라!”. 집에 돌아온 감무는 시름하며 한숨만 내쉰다. 그때 어린 손자 감라가 할아버지 무슨 걱정이 있으세요?” 감무는 폐하께서 수탉이 낳은 알을 가져오라고 하시는구나.” 손자는 한참 생각하다가 할아버지 걱정하지 마세요! 제게 좋은 생각이 있어요. 사흘 뒤에 저와 함께 궁으로 가주세요.” 평소 재치 있는 말과 영특한 생각으로 주변을 놀라게 한 적이 있는 손자이기에 감무는 알겠다고 대답했다.

사흘 뒤 궁 앞에 도착한 손자 감라는 할아버지에게 혼자 들어갈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진시황 앞으로 간 감라가 말했다. “폐하, 저는 감무 대신의 손자 감라입니다.” 진시황은 그런데 왜 혼자 왔느냐?” 감라는 . 할아버지가 지금 아기를 낳고 있어서 저 혼자 왔습니다.” 진시황은 기가 차서 말했다. “뭐라고? 남자가 어떻게 아기를 낳는단 말이냐? 어디 황제 앞에서 거짓말을 하려 하느냐!” 감라가 대답했다. “수탉도 알을 낳는데 남자라고 왜 아기를 낳지 못하겠습니까?” 진시황은 그제야 감무에게 한 명령이 생각나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감무를 불러 사과했다.

감무가 죽음의 함정 앞에서 근심에 휩싸여있을 때, 그 표정을 읽어내고 그 걱정의 내용을 물어봐 주고 걱정을 덜어주고자 나선 손자 감라로 인해 황제가 잘못을 인정, 사과함으로 근심을 놓게 되었다는 얘기다.

걱정', '염려'를 뜻하는 단어 'worry'의 어원은 '물어뜯다'는 뜻이다. 걱정과 염려에 빠지면 짐승이 싸울 때 서로 물어뜯듯 피를 흘리고 힘이 빠지며 끝내 죽음에 이를 수도 있다.

감라가 할아버지의 근심을 읽어내고 물어보고 덜어주고 싶은 마음을 냄으로 할아버지를 죽음에서 살려낸 것처럼, 오늘 O 선생님을 통해 흐르던 피가 멈추고 힘이 회복되어 근심이 놓이게 됨을 느낀다.

너나없이 부자 되려고 싸우는 가운데 이웃의 아픔, 근심을 이해하고 공감하며 덜어주려고 하는 사람이야말로 같이 살고 싶은 사람이다. 이른바 자치 공동체란 상대의 아픔을 이해하고 공감하고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서로서로 확인할 수 있을 때 가능하다. 모름지기 교육이란 그런 공동체를 꿈꾸는 것이어야 한다.

다시금 O 선생님의 사랑과 관심에 감사를 전하고 싶다.

“O 선생님! 참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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