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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이야기
  • 푸르른 보리밭의 행복이여!

  • 작성자 : 이*양 작성일 : 2024-04-01 조회수 : 34

                                                                  푸르른 보리밭의 행복이여!

이계양(광주푸른꿈창작학교 교장)

 

요즘 보리밭이 날로 짙게 푸르러 가고 있다. 마침 엘리너 파전의 보리와 임금님을 다시 읽을 기회가 있었다.

천재 소리를 듣는 교장 선생님의 어린 아들 윌리. 윌리는 아버지의 기대 속에서 훌륭한 사람이 되라며 권하는 많은 책을 읽었다. 그런 그가 열 살이 되면서 책을 외면하고 벙긋벙긋 웃기만 하며 입을 닫은 바보가 되었다. 이 바보를 마을 사람들은 바보 윌리라 부르며 다른 마을 사람들에게 자랑하기까지 한다.

윌리는 보리와 외모와 속성이 닮았다. 아름다운 눈, 갈색 머리칼, 흰 피부, 주근깨 살짝 박힌 금빛 하얀 살결, 악의 없는 푸른 눈동자, 매력 넘치는 빙긋 웃는 입술을 가진 윌리.

어느 날 윌리가 보리밭 옆에서 이집트 왕의 이야기를 내게 해 준다. 큰 덩치, 가슴까지 길게 내려온 까만 수염, 독수리 같은 눈매, 머리 장식과 옷이 반짝이는 남자. 누가 봐도 왕임을 금방 알 수 있는 사람. 은 접시에 든 음식을 먹고, 금잔의 술을 마시며 진주 이불을 덮는 사람. 화려한 궁전, 멋진 옷, 왕관, 보석, 재물이 가득한 상자를 가진 왕. 보리를 닮은 윌리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이런 임금님의 황금보다 황금빛 보리밭을 더 빛난다고 생각하는 윌리는 왕의 이해할 수 없는 분노로 보리밭을 모두 잃게 된다. 그 후 왕은 곧 죽게 되는데 몇 알 남은 보리는 아직도 살아서 빛나고 있다는 이야기다.

여기서 윌리와 왕은 빛난다는 공통점이 있다. 윌리는 보리밭의 황금빛과 생명력으로 오래 반짝 빛나고, 왕은 황금과 권력으로 잠깐 반짝 빛나는 사람이다. 똑같이 빛나지만 왕의 황금과 권력의 빛남은 금세 무너지고 사라지지만, 윌리의 보리밭은 유구한 시간 속에서 더 번성하는 생명력으로 빛난다. 윌리는 왕의 황금빛 망토가 우리집 보리밭처럼 좋은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더군. 몇백 년, 아니 실은 몇천 년이 지난 뒤에 왕의 무덤 속에 있던 황금 그릇들은 햇빛 아래서 모두 스르르 무너져내렸지만 보리는 그렇지 않았어.’라며 이집트 왕과 보리의 빛남에 대하여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또 왕의 빛남은 혼자 빛나는 개인에 그치고 있다. 왕의 궁궐과 왕관, 보석과 옷과 재물은 왕 자신을 빛나게 하는데 그치고 있다. 그러나 윌리와 보리의 빛남은 마을 사람들을 통하여 함께(더불어 공동체) 빛나고 (자랑거리가 되고) 있다. 그 외모와 속성에 대하여 마을 사람들이 자랑하는 것으로 볼 때 윌리는 보리와 더불어 빛나는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나아가 누가 더 행복할까. ‘혼자 빛나는 왕공동체와 더불어 빛나는 윌리와 보리’. 왕의 권력, 위엄, 많은 황금, 빛나는 명예 등은 호사요 영광, 달콤한 행복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 수명은 불과 일 년에 그친다. 이듬해 1년이라지만 결국 인간 생명의 유한성의 한계를 말할 뿐이다. 영원을 살 것처럼 허세를 부려도 혼자 빛나는 개인의 운명은 이렇듯 허무하고 순간일 뿐이다. 그러나 윌리와 보리는 마을 사람들은 더불어 빛나는 행복한 공동체를 이루고 있지 않은가. 말하자면 왕과 윌리, 마을 사람들, 보리의 대비는 혼자 빛나는 불행한 개인더불어 빛나는 행복한 공동체의 모습을 극명하게 대비하고 있는 셈이다.

특히 윌리를 바보라 부르면서도 다른 마을 사람들에게 자랑스럽게 말하는 마을 사람들은 누구이고 누구여야 할까. 바로 우리 자신이어야 하지 않을까. 문득 떠오르는 바보들이 있다. 스스로 자화상에 '바보야'라고 서명한 김수환 추기경, ‘바보 노무현이라 했던 전 대통령, 한국의 슈바이처라고 불리는 장기려 박사, 분신으로 노동문제를 제기한 전태일, 비정규노동 문제 개선에 몸 바친 노회찬 그리고 이름 없는 유형무형의 선량하고 정직한 이웃들 등.

요즘 학교와 일터 곳곳에서 혼자 빛나는 불행한 개인들을 언론, SNS 등을 통해 수없이 만나고 있다. 또 그것을 신자유주의는 부추기고 있다. 이는 16세기 산업 혁명 이후로 지금까지 이어지는 인류의 당면 과제이기도 하다. 이른바 훌륭함, 영웅, 성공, 출세의 담론은 이제 그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듯하다. 그 종말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을 안고 <보리와 임금님>을 통해 지혜를 엿보게 된다. 모두가 빛나는 개인이 되려 하면 왕처럼 불행한 개인으로 죽고, 모두가 바보 윌리, 보리처럼 되려고 하면 몇백 년 몇천 년이 지나도 푸르른 보리밭의 행복한 공동체로 살아남게 될 것임을. 한흑구 님의 수필 <보리> 마지막 구절이 떠오른다. 보리, 너는 항상 순박하고 억세고 참을성 많은 농부들과 함께 이 땅에서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푸르른 보리밭의 행복이여! 영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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