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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보도자료
  • 그들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되어라

  • 작성자 : 정*봉 작성일 : 2024-04-08 조회수 : 28

그들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되어라 / 이계양

 

 

http://www.kjdaily.com/1685875170603536019   2023. 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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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양 광주푸른꿈창작학교 교장 / 품자주자시민들 공동대표

얼마 전 후배인 김모 변호사로부터 책을 선물 받았다. 약간 쑥스러운 표정과 태도로 “제가 쓴 글을 모은 책인데 읽어보세요” 하며 건넸다. ‘진정성과 공감 능력에 대한 고민을 담았습니다. 교사불여졸성’이라고 친필로 적은 『불편한 동행』이라는 책이었다.

교사불여졸성(巧詐不如拙誠). ‘교사’는 기교사위(機巧詐僞), ‘졸성’은 본졸성실( 拙誠實)의 준말로 교묘한 거짓(巧詐)은 졸렬한 성실(拙誠)에 미치지 못한다는 뜻이다. 화려한 언변으로 위장한 행동으로는 투박하고 어리석고 졸렬하지만 성실하고 진정성 있는 사람을 이기지 못한다는 ‘한비자(韓非子)’ ‘설림(說林)’ 편에 나오는 두 이야기다.

중국 위(魏)나라 문후(文侯)가 악양(樂羊)을 장수 삼아 중산국(中山國)을 공격할 때였다. 당시 악양의 아들 악서(樂舒)는 중산국의 관리로 있었고, 이에 중산국의 왕은 악서를 인질로 삼고 공격 중지를 요구했다. 그러나 악양은 아랑곳하지 않고 오히려 총공격을 했다. 화가 난 중산 국왕은 그 아들을 죽여 머리와 몸뚱이로 국을 끓여 악양에게 보냈다. 악양은 태연하게 그 국을 들이켜고는 흔들림 없이 공격해 결국 중산국을 함락시켰다. 이에 문후가 악양을 칭찬하며 “악양이 나 때문에 자식까지 먹었군”이라 하자, 신하가 “자기 자식의 살을 먹는 사람이 누구인들 먹지 않겠습니까?”라고 대답했다. 악양이 전쟁터에서 돌아오자, 문후는 그 공을 치하했지만 마음 속으로는 늘 그를 의심했다고 한다.

노(魯)나라 맹손씨(孟孫氏)가 새끼 사슴 한 마리를 사냥했다. 어미 사슴이 슬피 울며 따라오자, 신하인 진사파(秦西巴)는 새끼를 놓아주었다. 이에 맹손은 크게 노하여 진서파를 내쫓아버렸다. 그 얼마 후 맹손은 진서파를 다시 불러 아들의 스승으로 삼았다. 맹손의 마부가 의아해 물었다. “지난번에는 죄를 물어 내쫓으시더니 지금 아드님의 사부로 삼으신 것은 어째서입니까?” 맹손은 “새끼 사슴도 차마 두고 보지 못하는데 내 아들에게 함부로 하겠느냐? 그래서 가장 적임자라고 생각했다”고 대답했다.

이에 대해 한비자는 “교묘한 속임수는 졸렬한 진실보다 못하다(巧詐不如拙誠). 악양은 공을 세웠지만 의심을 받았고, 진서파는 죄를 지었지만 더욱 신뢰를 받았으니, 한 사람은 인(仁)하고 한 사람은 불인(不仁)했기 때문이다.”고 말하였다. 공자가 교언영색(巧言令色)하는 자에게는 인(仁)이 드물다고 했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인(仁)은 측은지심(惻隱之心)이다.

언젠가 지인의 출판기념회에서 들은 얘기다. 우리나라 공동체마을의 성공적인 모델로 알려진 성미산마을에서다. 처음 성미산마을을 시작했던 주민 중 한 분에게 가장 기억에 남은 일이 무엇이냐고 누군가가 물었을 때 “맨 싸운 기억밖에 없어요”라고 대답했다. 그렇다. 같이 사는 일은 불편한 일이고 그 불편으로 인해 싸울 수밖에 없다. 다만 싸우면서 다시 만나는 일을 무한 반복하는 것이 성공적인 마을공동체를 이루어낸 것이다. 후배의 책 제목처럼 불편한 동행 끝에 공동체가 된 것이다.

여기서 공동체의 속성은 불편하다는 것과 그래도 같이 산다는 것이다. 같이 산다는 것은 불편을 견뎌내는 일이다. 어찌 날마다 희희낙락하는 날만 이어지겠는가. 사람마다 잘하는 것, 남는 것, 많은 것도 있지만 잘 못하는 것, 부족한 것, 적은 것도 많다. 누구에게나 있는 잘 못하고, 부족하고, 적은 것을 탓하고 지적하는 일은 제 얼굴에 침 뱉기이다. 오히려 측은지심(惻隱之心)으로 불편한 그것들을 품고 안아야만 한다. 부부의 백년해로도, 이웃과 함께 사는 일도 마찬가지다. 존중과 배려로 배우자와 이웃을 도우려는 진정한 마음이 동행의 전제이다. 후배 어머님의 말씀처럼 ’힘없는 사람들을 무시하지 말고, 그들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자처하고 나서는 사람들끼리만 불편한 동행이 가능해진다는 말이다. 그런 점에서 책에 나오는 진정성과 공감 능력은 공동체의 속성이며, 공동체를 가꾸고 이루는 진수다.

실제로 책의 곳곳에는 필자의 진정성과 공감 능력에 대한 고민이 배어 있었다. 차이와 차별, 속물적 근성과 양심, 선과 악, 법과 도덕, 피고인과 피해자, 권리와 의무, 현실과 이상, 이론과 실제, 상식과 정의, 다른 가치관과 상황 사이에서 변호사라는 직업인이 갖는 고뇌를 읽을 수 있었다.
 

“ㅇㅇ야, 항상 처음 시작했던 마음을 잊지 말아라. 못 배우고 힘없는 사람들을 무시하지 말고, 그들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되어라”는 어머님의 말씀을 다시 새긴다. 불편하지만 졸성(拙誠)을 통해 공동체를 이뤄 살아가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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