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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이야기
  • 혐오에서 환대로

  • 작성자 : 이*양 작성일 : 2024-04-01 조회수 : 35

                                                                     혐오에서 환대로

이계양(광주푸른꿈창작학교 교장)

 

경쟁과 효율 그리고 성과에 매달려 살아온 것이 언제부터일까? 시작을 알 수 없지만 이젠 거스를 수 없는 도도한 물결이 된 것은 분명하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경쟁으로 우린 모두 ()’이나 다름없다. 서로 배제하고 혐오해야 하는 구조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다.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는 하이데거의 말마따나 일상의 삶이 언어 속에 혐오 표현이 고스란히 스며 있다.

찐따(어수룩하고 찌질한 사람,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을 뜻하는 비속어), 병신(장애인을 모욕하는 말), 발암(질병이나 환자에 대한 혐오 표현), ~(벌레를 뜻하는 ‘-을 붙여 집단 전체를 비하), 병맛(‘병신 같은 맛의 줄임말로 맥락 없고 형편없으며 어이없음을 뜻하는 말), 지잡대(지방에 소재하는 잡스러운/잡다한 대학교를 지칭하며 지방대학을 비하하는 말), 김치녀(여성의 권리는 원하지만 의무는 다하지 않는 여성, 남성의 가치를 돈으로 평가하고 남성에게만 경제적 책임을 지우는 여성등을 의미하여 한국 여성을 비하하는 말), 김여사(운전자가 여성이라는 점만을 특정하여 드러내는 악의적인 해석), -(틀니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이는 노인의 부정적인 특성만을 함축적으로 강조), 외쿡사람(자신의 부정확한 한국어 발음을 조롱하는 말), 흑형(흑인 형의 줄임말) 등등. 심지어 극혐’(극도로 혐오한다는 뜻)도 나온 지 오래다.

혐오는 한자로 싫어할 혐()’, ‘미워할 오()’이니 싫어하고 미워하는감정이다. 세대, 성별, 계급, 거주 지역, 외모, 정치 성향, 직업까지도 혐오 표현의 대상이 되고 있다.

학교나 사회에서 다른 사람을 혐오하는 것은 나쁘다고 가르치고 배운다. 또 누구나 혐오는 나쁘다는 데 동의한다. 그런데 학교나 사회는 혐오가 만연한 상태이고 점점 더 심각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어쩔 수 없다고 마냥 구경할 수만은 없는 일이다. 어찌해야 할까.

혐오는 나쁘니까 하지 말라거나 하지 말자는 말로 해결할 수 있을까.

이 문제에 대하여 인류학자인 김현경의 사람, 장소, 환대(문학과 지성사, 2015)를 통해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본다. 김현경은 사람과 인간을 구분하여 설명한다. 어떤 개체가 인간이라면, 그를 보거나 이름을 부르기 전에 고유한 특성에 의해 자연적으로 이미 인간이다. 사회적 인정의 문제가 아니라는 말이다. 그리고 사람은 관계와 사회 내에서 어떤 보이지 않는 공동체-도덕적 공동체-안에서 성원권을 갖는다고 본다. 누군가가 사람이 되려면 사회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또 사회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고, 자리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 결국 사람은 그를 인정해 주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공간 즉 사회 속에서만 사람일 수 있다는 말이다.

여기서 타인에게 자리를 주는, 혹은 사회 안에 있는 그의 자리를 인정하는 행위가 환대다. 자리를 주고 인정하는 것은 그 자리에 딸린 권리들을 주고 인정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환대는 필연적으로 공공성에 대한 논의에 이르게 되고 공공의 노력을 통해 실현될 수 있다고 본다.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학교나 세상은 입으로는 존중과 배려를 말하면서, 몸으로는 차별과 배제 즉 혐오를 가르치고 배우고 있는 것은 아닐까. 특히 코로나의 긴 터널을 지나면서 만남과 소통에 대한 절실한 요구 앞에서도 개인의 성취와 욕구를 채우기 위해 시간과 돈과 에너지를 집중하여 사용하고 있다. 다른 사람을 환대할 시간과 공간을 마련해 두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인정해 주는 것 곧 환대는 사람과 사람의 연대의 다른 말이다.

다층적 이해관계로 얽혀 있는 사회, 온라인 소통을 매개로 한 자기중심적인 알고리즘이 작동하는 세상에서 환대, 연대하는 일이야말로 혐오를 넘어설 구체적, 실천적인 방법이요 덕목이라고 본다. 모든 사람들이 아무 대가도 지불하지 않고 환대를 통해 이 세상(사회)의 구성원이 된 것처럼 누군가를 환대하는 일에 너나없이 나서야 하는 것은 마땅한 일이다.

잘하지 못해도 괜찮아”, “애쓰지 않아도 돼”, “너니까 괜찮아라는 말들을 되새기며, 정현종 시인의 <방문객>을 읊조리면서 지금 누군가를 두 손 들어 환대할 것을 다짐해 본다. ‘사람이 온다는 건/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그는/그의 과거와/현재와/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부서지기 쉬운/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마음이 오는 것이다.//그 갈피를/아마 바람은 더듬어 볼 수 있을 마음./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 낸다면/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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