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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이야기
  • 각자도생과 연민공동체

  • 작성자 : 이*양 작성일 : 2024-04-01 조회수 : 38

                                                                     각자도생과 연민공동체

이계양(광주푸른꿈창작학교 교장)

 

최근 코로나가 다시 유행하는 상황에서 백경란 질병관리청장이 "국가주도방역은 지속가능하기 어렵다"고 발언하여 새롭게 각자도생이 부각되었다. 방역뿐인가. 노동ㆍ여성ㆍ장애ㆍ복지 등 사회의 여러 분야에서 공평과 공정, 정의보다 각자도생은 현실적 선택지로 보인다.

각자의 생존을 각자 책임지려니(각자도생) 이를 위협하거나 침해하면 여지없이 적대적이다. 장애인들의 이동권 보장을 위한 지하철역 시위나, 연세대 일부 학생들이 시급 올려달라며 학내 집회를 한 청소노동자들에게 정신적 손해배상을 청구한 일, 대우조선옥포조선소에서 유최안 용접공이 사방 1미터 철제 상자 속에 31일 동안 자신을 가두며 이대로 살 순 없습니다라고 목숨을 걸고 외치는 일 등. 곳곳에서 나 좀 살려달라고 아우성인데 한편에선 나만 살겠다고 윽박지르는 모순의 현실이 눈앞에 있다.

나만 살겠다는 세상에서 너, 너들은 혐오와 배제의 대상일 뿐이다. 안으로는 이념, 세대, 지역, 계층, 성별, 인종, 종교, 직업 등등에서 혐오와 배제의 덫을 놓으며 각자도생의 막다른 길로 돌진하고 있다. 밖으로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식량위기, 고물가, 고환율, 고금리 등으로 인한 물가 급등과 폭염, 가뭄, 홍수, 한파로 온 세계가 자국의 안보와 경제만을 위해 유무형의 전쟁으로 각자도생을 도모하고 있다.

답답한 마음에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들춰본다. 갓난 두 아이 엄마의 영혼을 거둬오라는 명령을 거역한 죄로 인간 세상에 내려와 세 가지 진리를 깨닫는 천사 미하일의 이야기다.

먼저 사람의 마음에는 무엇이 있는가?’ 알몸의 천사 미하일을 발견한 세몬은 그냥 지나치려다 양심의 가책을 느껴 자신의 코트를 입혀 집으로 데려오고, 그 아내 마트료나는 화를 내면서도 불쌍한 마음에 저녁밥을 차려준다. 이 부부를 통해 미하일은 사람에게는 양심과 불쌍히 여기는 마음(연민)이 있음을 깨닫는다. 다음으로 사람에게 허락되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미하일은 오늘 안에 죽을 줄 모르고 1년 신을 튼튼한 장화를 주문하는 부자를 보며 사람은 자신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아는 능력이 없다는 걸 깨닫는다. 끝으로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미하일은 자신이 낳지 않은 아이들을 눈물 어린 사랑으로 돌보는 부인의 모습을 통해 사람은 사랑으로 살아간다는 걸 깨닫는다. 그리고 제가 사람이 되어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은 제 힘으로 스스로를 보살필 수 있어서가 아니라 지나가던 사람과 그의 아내가 사랑과 온정을 베풀어 주었기 때문입니다. 부모를 잃은 그 아이들이 살 수 있었던 것은 스스로를 보살필 수 있어서가 아니라 이웃집에 사는 한 여인이 따뜻한 마음으로 아이들을 가엾이 여기고 사랑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렇듯 사람은 누구나 자신에 대한 걱정과 보살핌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에 있는 사랑으로 사는 것입니다.”라고 고백한다.

이 각자도생의 시대를 어떻게, 무엇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연민이다. 연민은 영어로 Compassion이다. 라틴어 어원 com은 함께 하다, passion은 고통을 겪다는 뜻으로 "고통을 함께 느낀다"는 공동체성을 내포하고 있다. 러시아어도 연민(sostradanie)’함께(so)’고통(stradanie)’의 합성어, 함께 고통당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나만 알고, 나만의 생존에 목을 매다 보니 고통스럽다. 또 내 고통에 매몰되다 보니 남의 고통은 안중에 없다. 고통을 나눌 수 없는 세상은 참혹하다. 내가 너로 인하여 존재하고, 나와 너로 인하여 우리라는 보이지 않는 공동체가 가능하다, 공동체는 연민이라는 끈으로 묶여 있다. 남의 고통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연민이다.

맹자는 사람의 본마음을 남의 고통을 보고 차마 견딜 수 없어 어쩌지 못하는 마음(不忍人之心)’이라 했다. 사단(四端) , 측은지심(惻隱之心) 불쌍하게 여길 줄 아는 마음인 인지단(仁之端), 수오지심(羞惡之心) 부끄러워할 줄 아는 마음인 의지단(義之端), 사양지심(辭讓之心) 양보할 줄 아는 마음인 예지단(禮之端), 시비지심(是非之心)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마음인 지지단(智之端)이 그것이다. 불인인지심 즉 차마 어쩌지 못하는 사람의 마음은 곧 '양심'이고 이것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라고 했다. 여기에 각자도생을 넘어설 실마리가 있다.

그렇다. 연민이다. 나도 너도 우리 모두 연민 공동체를 이루면 된다. 가난하고 소외되어 억울하게 고통받고 있는 모든 , 들과 함께하면 된다. 차마 어쩌지 못하는 양심, 불쌍히 여기는 연민의 공동체로 하나가 되는 세상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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