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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이야기
  • 짠한 마음의 살림, 공동체의 공정

  • 작성자 : 이*양 작성일 : 2024-04-01 조회수 : 31

                                                                        짠한 마음의 살림, 공동체의 공정

이계양(광주푸른꿈창작학교 교장)

 

날씨가 쌀쌀해지고 있다. 가을이 깊어 가고 낮아지는 기온에 맞춰 옷깃을 여미고 뭔가 갈무리할 시간임을 직감한다. 뭘 어떻게 갈무리할까를 생각하다가 갈무리할 것이 없는 이들에게 생각이 미친다. 고물가, 고환율, 고금리 시대에 저임금과 고강도 고위험노동에 혹사당하며 살아가는 다수의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으로 허약, 빈약한 노동자들 말이다.

3년이나 계속되는 코로나가 가난한 사람이나 지역, 국가에 치명적이었듯, 어려운 경제 상황 역시 없는 사람들에게 훨씬 절박한 위기감을 안겨준다.

얼마 전 다수의 국민은 공정과 상식을 앞세운 후보자에게 실낱같은 희망을 걸고 국가지도자로 선택하였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힘들고 어렵지만 그래도 공정과 상식에 희망을 걸고 참고 견딜만한가. 선거 당시의 공정과 상식은 아직 유효하게 살아있는가. 회의하면서 질문해 본다.

공정의 개념에 대해선 논란이 분분하다. 개개인과 각 집단의 입장과 이해관계와 가치와 이념이 다르기 때문이리라. 여기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고 싶고 살고 싶어하는 곳인 천국의 공정을 함께 생각해 보고 싶다.

흔히 포도원 품꾼의 비유또는 선한 포도밭 주인의 비유라고 일컫는 성경의 이야기다.

내용은 이렇다. 주인이 이른 아침 하루 품삯으로 한 데나리온을 주기로 하고 일꾼들을 자기의 포도밭으로 보낸다. 다시 오전 9시쯤에 거리에 나가 일거리가 없어 빈둥거리는 사람들에게 한 데나리온의 품삯을 주겠다며 포도밭으로 보낸다. 또 낮 12, 오후 3시에도 그렇게 한다. 마지막으로 오후 5시쯤에도 다시 거리로 나가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포도밭 일자리를 준다.

저녁이 되어 일을 마치자 주인은 일꾼들에게 품삯을 지불한다. 먼저 오후 5시에 온 사람들에게 한 데나리온을 준다. 그리고 아침 일찍부터 와서 하루 내내 일한 사람들에게도 역시 똑같이 한 데나리온을 준다. 그러자 아침 일찍 온 사람들이 불평을 한다. "아니 왜 저들과 똑같이 줍니까? 우리가 더 길게(많이) 일하느라고 고생했는데 왜 대우가 같나요?(불공정하지 않나요?)“ 주인은 난 불의한 것이 없다. 너는 처음에 한 데나리온 받기로 했잖냐? 나중에 온 이들도 한 데나리온 주기로 했다. 그래서 약속한 대로 한 데나리온씩 줬다. 뭐가 잘못됐냐? 내가 불공정하냐?“ 하고 질책하듯 질문으로 대답을 대신한다.

천국의 공정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하는 이야기다.

무엇이 공정인가? 공정(公正)의 뜻은 공평하고 올바름이다. 사사로움을 뒤로하고 공적인 평등을 최선의 올바른 가치로 여긴다는 점에서 공명정대(公明正大)라 할 수 있다.

공정(公正)의 의미가 품꾼과 주인의 입장에 따라 사뭇 다르다. 품꾼은 내가 더 긴 시간을(또는 더 많이) 일했으니 처음 계약과 달리 더 보상해 주는 것이 공정이다고 주장한다. 반면 주인은 처음 계약한 대로 모든 약속을 다 지켰고, 그리고 오후까지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사정, 상황이 있는 자들도 하루 일당을 받아 먹고살아야 한다는 점에서 모두 같은 입장이므로 공정하다고 말한다. 다시 말하면 품꾼인 가난한 자들은 사사로움을 앞세워 공정을 주장한 셈이고, 주인인 가진 자는 모두가 하루 세끼를 해결해야 하는 똑같은 사람들이라는 점을 앞세워 공정을 말한 셈이다.

요즘 우리 사회에는 사적 채용, 검찰 수사, 법원판결, 노사협약, 중대재해처벌법, 사면문제, 임대차계약 등등에서 개인이나 단체, 기관의 사적 이익이나 편리를 위해 차별하고 배제하는 문제 상황들이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인정사정없이 나와 우리 집단, 회사의 이익 앞에서 그 누구도 그 무엇도 용납할 수 없다는 극단적인 이기주의와 편협한 공정이 난무하고 있다. 경쟁과 효율, 나의 이익을 앞세우는 품꾼의 공정 앞에서 주인의 함께 먹고 같이 살자는 공정은 설 자리가 갈수록 위태롭기만 하다. 품꾼의 공정이 너 죽고 나 살자는 극단으로 치닫는 죽음의 공정이라면 너도 살고 나도 살자는 주인의 공정은 생명으로 향하는 살림의 공정이라 할 것이다.

생전의 박경리 선생은 비애를 모르는 인간은 돼지와 같다고 말한 바 있다. 오후 늦은 시간까지 기다리며 찾은 품꾼들을 향한 주인의 짠한 마음, 아직도 주인의 눈에 띄지 않아 골목 어느 모퉁이에서 웅크리고 있을 그 누군가를 향한 짠한 주인의 마음이 내 마음이요 우리의 마음이 되어야 공정한 것 아닐까. 모름지기 공동체의 공정은 사람을 살리는데 있어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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